마포삼열 선교사 사택에서 방기창, 김종섭 2명으로 개교하여 초대교장에 마포삼열 목사 취임.
장로회 공의회에서 평양연합신학교로 정식 승인함.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 (길선주, 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이기풍, 양전백, 한석진)
미국인 멕코믹 여사의 헌금으로 최초의 한와식 교사 건축.
독립만세 운동에 전교생이 가담. 투옥되어 1학기는 자동 휴교.
미국인 멕코믹 여사의 2차 희사금으로 학교 준공 헌당 예배.
제 2대 교장으로 나부열 박사 취임.
제 3대 교장으로 채필근 목사 취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주둔 사령부에 의해 학교 건물이 강제 점거되어 신학교가 서문밖 교회 교육관으로 이전하여 신학 교육을 계속.
민족운동의 선구자인 김인준 목사가 제4대 교장으로 취임 하였으나 북한 공산정권 당국이 용공 교육 회유책으로 신학대학 인가를 내어 주겠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인가를 받고 있으니 세상나라에서 대학 인가가 필요치 않다고 하며, 완강히 계속 거부하다 반동이라는 죄목으로 순교.
반공통일운동의 주역이신 김화식 목사가 제5대 교장으로 내정되어 집무하시다 반동분자 죄목으로 체포되어 순교.
제6대 교장으로 이성휘 목사가 취임하였으나 공산당이 세운 기독교연맹 신학교에 강제 폐합을 당해 부득이 폐교하고 6.25직전 이성휘 목사 순교.
후퇴시 월남한 성직자 신자들로 인해 장로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하였으나 지도층의 이해관계로 교단의 분열과 신학교의 난립으로 성스러웠던 성직자들의 옛 모습은 점점 희박해지고 한국교회의 앞날을 어둡게만 하고 있음으로 청교도적인 옛 평양신학교의 전통 신앙정신을 바탕으로 한 개혁주의 보수신학으로 사명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뜻있는 평양신학교 선배들이 결속하여 평양신학교를 서울에서 재건하고 김성흡 목사가 취임.
제7대 교장으로 김성흡 목사가 취임.
제8대 교장으로 평양신학교 제37회 졸업생인 김오성 목사가 취임.
제9대 교장으로 본교 출신 박병훈 목사가 취임.
제10대 교장으로 김성흡 목사가 취임하고 김오성 목사를 신학연구원 원장으로 위촉함.
김오성 목사가 은퇴하시고 제5대 연구원장에 김안일 목사가 취임.
제11대 학장으로 진택중 목사가 취임.
제12대 학장으로 진미애 목사가 취임.